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은 어느 날 공원에서 마주한 마로니에 나무뿌리로부터 공포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앉은 의자 밑으로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로부터 모든 것은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에 의해 붙여진 기호와 사물의 속성이 제외된, 존재의 외부로부터 부여된 것이 ‘벗겨진’ 상태는 사물의 ‘존재함’ 그 자체를 드러낸다. 의미 없는 사물의 현존은 로캉탱으로 하여금 ‘구토’를 느끼게 한다. 로캉탱은 “갑자기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대낮처럼 분명했다. 존재가 갑자기 탈을 벗은 것이다. 그것은 추상적 범주에 속하는 무해한 자기의 모습을 잃었다. 그것은 사물의 반죽 그 자체이며, 그 나무의 뿌리는 존재 안에서 반죽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고기 작가는 인간 존재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공포에 주목한다. 그것은 존재가 세계에 속해 있으나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과 외부에 가득 찬 무상함으로 인해 촉발되는 불안과 공포다. 작가는 인간을 태초부터 잃어버린 ‘서사’가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이 서사는 찾을 수 없는 마지막 조각과도 같은데, 존재란 결정적 사건-순간을 기다리는 99.9%의 미완결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를 마주하는 작가는 모든 사건들이 종결된 후의 증거물로서 남은 사진-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작가 스스로 ‘이미지 호딩(hoarding)’이라 이름 붙인 과정을 통해 모은 이미지들은 작가의 의지를 통해 색상, 사건, 연출이 제외된 상태인 원초적인 단계로 들어선다. 이는 마치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의도와 과정들을 배제하였을 때, 결국 ‘세계의 무상성’만 남는 모든 인간사와 같다.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어떤 ‘조짐’은 작가의 손을 통해 파편화되고, 화면 속에서 재구성되며 그것은 새로운 서사를 위한 실마리가 된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존재의 필연적인 불안을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바꾼다. 그의 관심사는 ‘AI 골렘’, ‘목 잘린 닭’, ‘길리슈트 맨’, ‘투견-개’의 시리즈들과 그 외의 드로잉들로 나타난다. 각각의 상징들은 현대-원시적 존재를 연상시키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을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행동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화면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요소들인 불안의 상징과 같은 뿔의 형태, 대상을 휘감는 뱀의 이미지, 그리고 화면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수직의 기둥들은 ‘존재’를 둘러싼 세계의 조짐을 나타낸다.

고기의 작업에서 보이는 뒤엉키고 일그러진 요소들은 로캉탱으로 하여금 구역질을 하게 한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의 공허함의 가시화이고, 탈을 벗은 연약한 반죽이다. 존재의 공허함은 그림 속 대상들을 버무림으로, 직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그리하여 작가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차원으로 수렴되는, 이전과는 다르게 상징적으로 기능하는 요소들은 결국 단단하게 의미화 된 전면을 잃어버린 금방이라도 사라질듯 한 이면이다.

김세희(국민대학교 미술이론전공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