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겁이 많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야.”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협력하듯 서로의 목덜미를 물고 물리는 인간 군상이 투쟁하며 얽힌 모습을 그린 영화 ‘부당거래’에서 배우 류승범이 연기한 검사 ‘주 양’의 대사다. 이 대사 한 줄은 120분간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의 연쇄를 압축해서 설명하며 마찬가지로 모든 사건들을 다 부수고 해체했을 때 남는 것 또한 저 대사 한 줄일 것이다.

인간-존재는 모두 근원과 목적이 결핍된 부조리의 상태로 세계에 던져져 있다. 인간-존재에 내장된 근원과 목적의 결핍은 자신의 개념적 자아에 대한 자기서술을 위한 장기기억에서 존재 이전 최초의 사건이 잘려나가 있는, 마치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자기감’이 일부 상실된상태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서술이 시작부터 불완전함을 확증하고 있는 상태, 오로지 확실한 것은 죽음뿐인 인간-존재가 가진 최초로 존재의 내부와 경계 밖의 세계를 연결한 정서는 불안과 공포였을 것이다. 그리고 시선이 닿기 전에 이미 거기 있는 세계는 끊임없이 부조리의 사건이 발생하며 인간-존재에 내장된 결핍-부조리가 불러온 불안과 공포에 대해 무한히 연쇄적으로 조응하여 그것을 배가시킨다. 이렇듯 끊임없이 발생하여 인간-존재의 내부와 세계를 가득 채우는 불안과 공포, 그 것이 ‘주 양‘이 말하는 ‘겁’이며, ‘겁’(불안과 공포)이야말로 인간-존재가 스스로를 둘러 싼 세계를 명증한 무엇인가로 설명하기 위해 안정적인 구조-모델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자신 또한 거세된 ‘자기감’을 채울 무엇인가가 되고자 하게 만드는 무의식 속 욕망의 근원이자 에너지가 된다.

우리, 인간-존재는 모두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어떤 것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오력’ 한다.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으로서 ‘이름 붙여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름 붙여짐‘은 곧 그것에 대한 ’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무엇인가가 되고자함은 앞서 말한 거세된 ‘자기감’의 일부-내장된 결핍을 채워줄 ‘앎’(자기서술)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불안과 공포를 스스로 납득 가능한 수준의 모델로 수정, 조정, 보완, 보강, 치장한 일종의 자기기만적 판타지의 발생이다. 거세된 ‘자기감’의 일부-내장된 결핍은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노오력 하고 투쟁한다 해도 끊임없는 획득과 상실과 불안과 공포의 발생-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기만적 판타지에서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차라리 그것이 투쟁의 목적이 된다.

오래전 호딩(hoarding/저장)해놓은 투견 이미지를 들여다 본다. 두 마리의 개가 온몸을 뒤틀며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얽힌 채 뒹굴고, 서로의 몸을 덮치는 이미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한계 안에서도 온 몸을 던져 반복되는 투쟁을 이어가야만 하며 마침내 그 투쟁을 통해 결국 무엇인가가 되는 부조리의 사건 안에서 발생하는 실존.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도 이유와 목적은 따지지 않을 행위만 남아버린 사건. 이 모습들은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상태의 욕망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인가 됨‘이 발생하는 존재 이전의 사건이 막 촉발된 순간 같이. 그럴싸하고, 틀에 박힌, 겹겹이 덮여있는 것들을 걷어낸 가장 아래에 있을 원초적인 사건적 의식과 이 의식으로 획득되는 다양한 인간-존재의 양태가 투쟁하는 개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2017 Dog eat Dog 전_빠빠빠 탐구소